Deut 33:12 · 1 Samuel 16:23 · 2 Kings 3:15

6.22.2018


공간. 빌 공 사이 간, 공간이란 원래 비어 있는 것.
여백은 여백 자체로 의미있다.

6.20.2018


나의 가장 투명한 시절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올 날들에 더더욱 그러하길. 그리고 더욱 다듬어져가길.

6.16.2018


주장은 분명하게, 표현은 유연하게

6.13.2018


연주하는 자리 자체는 언제나 긴장되지만
와중에도 건반 위에 손을 얹음으로 느끼는 안정감 또한 특별하다.


심플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하나밖에 없어서 하나만 내놓는 것 말고.
내가 가진 열개를 백개 천개로 세분화하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만 골라서 조합해내는 하나.
그 작업이 어렵다.

광고 짜는데 머리가 터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진걸 다 보여주려고 하면 그 광고는 산으로 간다. 주목받지도 못한다.
나 이런 사람이야 그저 주절주절.
광고에서의 정보 전달이란 잠재적 구매자들의 궁금증을 완전히 해결해주는 것이 아닌 궁금증을 어느 정도 남겨줌으로써 구매자 본인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그 물건을 직접 구매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 여기까지 이르게 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6.12.2018


내가 100을 가진 사람이어도 한번에 100 전부를 보여주기보단 나머지 70을 녹여낸 30을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유쾌한 만남이 되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듯 녹아있는 그 70을 알아보는 이들이 분명 있다.

6.10.2018


합주 진짜 오랜만. 실력이며 합이며 완성도며 다 떠나서 일단 같이 모여 뭔가를 만들어나간다는 그 자체가 즐겁고 감사했다.
팀 디렉팅은 역시 악기보다 사람을 더 잘 알아야 하는 일이다. 그거 하나는 확실하다.

6.03.2018

2


동시에 그때의 나, 그니까 올초 세달간의 나는, 공동체에 나를 오픈하며 속하기에는 아직 꺼낼수 없는 이야기들이 뒤엉켜있었고, 또한 평범한 사람인척 나를 포장할수 있는 기운도 전혀 없는 상태였으므로. 정말 내가 할수있는만큼만 했다. 교회에게도 가족에게도.
모임도 안가고 싶으면 안갔고 섬김도 안하고 싶으면 안했다. 뺀질거리는듯 보였을테지만 그때는 그게 내 최선을 다해서 속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시작한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냥 드러나는데도 뭘 어떻게 수습할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을만큼 방전상태였다. 

한사람 한사람의 연약함은, 역설적이게도 공동체를 끈끈하게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그 전의 나는 내가 연약하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거라고 믿었었나보다.
사실은 그 반대다. 공동체가 나의 빈 부분들을 포용하면서 정말 몸으로 녹아가게 되는것.
그러려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먼저 보여주어야한다.

나는 항상 내 한계 이상의 모습을 가진 사람인양 행동하다가, 본모습이 들춰지면 도망가서 영영 숨어버리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감당할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입니다 말할 줄 알게 되었다. 이번에 다녀오면서.
내 얘기 하나도 안하고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맞춰주는건 절대 조율이 아니다,
그건 그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아니다. 그냥 내가 더 편한대로 하는거다. 라는것,

관계적인 완벽주의도 사라졌다. 그래 생채기없이 깊어지는 관계는 없다. 제일 자주 쓰는 물건에 어쩔수없이 생활기스가 생기는것과도 비슷하다. 흠집 안내려면 안쓰고 고이 모셔두면 된다. 그럼 그 관계는 그냥 딱 거기까지인것이다.
그에게 내 진짜 마음이, 내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게 불편해도. 그래도 나를 점차적으로 모두 꺼내줄수 있어야한다. 라는것을. 그게 관계맺기의 참 기초임을.
나 이제 진짜 막나가는구나 싶었던 그시간을 통해서 깊이 배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