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 33:12 · 1 Samuel 16:23 · 2 Kings 3:15

6.0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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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그때의 나, 그니까 올초 세달간의 나는, 공동체에 나를 오픈하며 속하기에는 아직 꺼낼수 없는 이야기들이 뒤엉켜있었고, 또한 평범한 사람인척 나를 포장할수 있는 기운도 전혀 없는 상태였으므로. 정말 내가 할수있는만큼만 했다. 교회에게도 가족에게도.
모임도 안가고 싶으면 안갔고 섬김도 안하고 싶으면 안했다. 뺀질거리는듯 보였을테지만 그때는 그게 내 최선을 다해서 속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시작한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냥 드러나는데도 뭘 어떻게 수습할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을만큼 방전상태였다. 

한사람 한사람의 연약함은, 역설적이게도 공동체를 끈끈하게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그 전의 나는 내가 연약하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거라고 믿었었나보다.
사실은 그 반대다. 공동체가 나의 빈 부분들을 포용하면서 정말 몸으로 녹아가게 되는것.
그러려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먼저 보여주어야한다.

나는 항상 내 한계 이상의 모습을 가진 사람인양 행동하다가, 본모습이 들춰지면 도망가서 영영 숨어버리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감당할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입니다 말할 줄 알게 되었다. 이번에 다녀오면서.
내 얘기 하나도 안하고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맞춰주는건 절대 조율이 아니다,
그건 그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아니다. 그냥 내가 더 편한대로 하는거다. 라는것,

관계적인 완벽주의도 사라졌다. 그래 생채기없이 깊어지는 관계는 없다. 제일 자주 쓰는 물건에 어쩔수없이 생활기스가 생기는것과도 비슷하다. 흠집 안내려면 안쓰고 고이 모셔두면 된다. 그럼 그 관계는 그냥 딱 거기까지인것이다.
그에게 내 진짜 마음이, 내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게 불편해도. 그래도 나를 점차적으로 모두 꺼내줄수 있어야한다. 라는것을. 그게 관계맺기의 참 기초임을.
나 이제 진짜 막나가는구나 싶었던 그시간을 통해서 깊이 배운것이다.